그러나 성소는 한 발 한 발 내딛어 벼랑 끝에 다다랐다. 소맷자락과 장화는 벌써 눌어붙어 있었다. 언제나 그의 얼굴에 덮여 있던 가면 같은 평온함이 찢어졌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것은 뜻밖에도 후련함과 광기였다.
평범한 사람인 편이 나았으리라.
* 49화
그 사람을 똑똑히 본 순간, 불현듯 어떤 격렬한 감정이 쉬엔지를 덮쳤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탄과 미칠듯한 환희였다. 두 개의 감정이 뒤엉키자 영혼까지 뒤따라 전율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여한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 같기도 했고, 가없이 어두운 밤에 오래도록 갇혀 있다가 마침내 한 줄기 새벽빛을 엿본 것 같기도 했다.
* 53화
"난 눈을 뜨자마자…널 봤어. 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꿈이 아니었지."
성령연은 대답 대신 민첩한 동작으로 긴 못들을 아로진의 사지에 하나씩 박아 넣었다. (…) 아로진의 말이 갑자기 먼 옛날의 아언으로 바뀌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이처럼 피도 눈물도 없을 수 있겠어? 그 누가 무정한 인황(人皇)에 걸맞겠습니까?"
* 58화
"그에게 뭐라고 한 거예요?"
성령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그때 말했던 것은.
"언젠가 내가 억울하게 죽은 모든 이들의 눈을 감겨 주고, 수습하지 못한 모든 주검을 거둘 거야."
그가 부끄러움 한 점 없이 내놓은 그 말이 아로진의 일생을 일그러뜨렸다.
무인족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이 있었다.
―영원히 동천을 떠나지 말지어다.
하지만 이 일을 겪은 소년 족장의 마음은 이미 드넓고 잔혹한 인간 세상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150화
검령의 울음소리 속에서, 성령연은 하는 수 없이 매일 잠들기 전 일주향씩 입정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법을 배웠다. 그는 검푸른 아이의 시체와 초췌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도록 자신을 다그쳤고, 미친 듯이 스스로를 단련했다.
(...)
검령은 성령연과 서로 목숨처럼 의지했으며, 성령연의 약점이기도 했다. 검령은 그를 대신해 털끝만큼도 드러낼 수 없는 연약함을 발산했고, 감히 누릴 수 없는 천진함을 대신 누렸다.
-
그러나 비록 이름이 없어도, 그들은 성령연에게 흔적을 남겼다. (...) 한 사람이 한 번씩 새긴 흔적이 그를 인황으로 만들어냈다.
*151화
마침내 '깨어난' 검령이 나지막하게 '령연'이라고 불렀을 때, 성령연은 말을 타던 중이라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어린 성령연은 그 미약한 목소리를 듣고 믿어지지가 않아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검령이 다시 한번 '령연'이라고 부르자 말에서 곤두박질쳤다. 그는 신경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진 나머지 하마터면 끊어질 뻔했다.
왤케잘생긴거냐.... (헤롱헤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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